이찬혁 EROS ‘멸종위기사랑’ 리뷰: 그 어느 때보다 사랑을 원하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사랑을 원하고 있다는 문구가 담긴 이찬혁 EROS 멸종위기사랑 리뷰 표지

사라질지 모른다는 불안 속에서, 오히려 더 선명해지는 사랑에 대한 갈망.

이찬혁 — EROS 수록곡 ‘멸종위기사랑’
EROS: 2025년 7월 14일 발매

멸종이라는 말 속에 남아 있는 사랑의 욕망

사랑 앞에 ‘멸종위기’라는 말을 붙이면 처음에는 체념처럼 들린다. 이제 그런 감정은 드물어졌고, 오래가는 관계는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렵다는 선언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무언가를 멸종위기에 놓였다고 부르는 데에는 그것이 사라져서는 안 된다는 마음도 들어 있다. 이찬혁의 ‘멸종위기사랑’을 읽는 출발점은 바로 그 두 번째 의미다.

EROS에 수록된 이 곡의 제목은 사랑이 끝났다는 소식보다 사랑을 잃고 싶지 않다는 고백으로 다가온다. 귀한 것이 드물어졌다고 해서 그것을 원하는 마음까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쉽게 얻을 수 없다고 느낄수록 갈망은 더욱 또렷해진다. 사랑이 사라지는 것 같다는 말의 안쪽에는, 그 어느 때보다 사랑을 원하고 있다는 마음이 함께 놓여 있다.

연락과 연결이 늘어도 사랑에 대한 갈망과 외로움이 남는다는 두 번째 카드

연락은 많아졌는데, 왜 여전히 외로울까

하루 종일 연락을 주고받으면서도 정작 자신이 이해받고 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을 수 있다. 서로를 알게 되는 속도와 서로를 믿게 되는 속도는 다르기 때문이다. 대화를 시작하는 일은 가벼워져도, 마음을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관계가 만들어지는 데에는 여전히 시간이 필요하다. 연결의 횟수가 친밀함의 깊이까지 대신해 주지는 않는다.

이 곡을 둘러싼 외로움도 그런 차이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사랑이 완전히 사라졌기 때문에 외로운 것이 아니라, 단순히 연락이 닿는 것보다 더 깊은 무언가를 원하기 때문에 외로운 것이다. 이해받고 싶고, 쉽게 떠나지 않을 사람을 만나고 싶고, 관계 안에서 안심하고 싶다. 많은 연결 속에서도 채워지지 않는 그 갈망이 ‘멸종위기사랑’이라는 말에 지금의 감각을 더한다.

빠르게 소비되는 감정 속에서 지속되는 사랑을 지키고 싶다는 세 번째 카드

오래가는 사랑이 드물다면, 더 지키고 싶어진다

감정이 쉽게 소비되고 관계가 빠르게 교체되는 듯한 분위기에서는, 오래 머무는 마음이 오히려 낯설어질 수 있다. 조금만 불편해져도 다른 가능성을 생각하고, 확신이 늦게 온다는 이유로 관계를 끝내야 하는지 고민한다. 아직 깊어질 시간을 갖지 못한 관계에 당장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라고 요구하는 셈이다.

그러나 드물다는 것은 가치가 없다는 뜻이 아니다. ‘멸종위기’라는 표현을 사랑의 무가치함이 아니라 보호의 필요성으로 읽으면 제목의 온도가 달라진다. 이것을 쉽게 포기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 다른 것으로 바꾸기보다 지금의 감정을 오래 품고 싶다는 마음이 드러난다. 사랑을 끝났다고 단정하는 것보다 사랑을 지키고 싶다고 인정하는 쪽이 훨씬 더 자신을 드러내는 고백일 수 있다.

속도와 효율을 요구하는 환경 속에서도 이해와 안정, 대체 불가능함을 원하는 네 번째 카드

우리가 원하는 것은 대체되지 않는 자리다

빠른 답과 효율적인 선택이 중요해질수록 관계의 느린 과정은 번거롭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누군가를 이해하는 일에는 바로 처리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같은 이야기를 다시 들어야 할 때도 있고, 설명되지 않는 마음 옆에 잠시 머물러야 할 때도 있다. 그 시간이 쌓여야 비로소 상대가 안심하고 기댈 수 있는 자리가 생긴다.

우리가 사랑에 바라는 것도 결국 그런 자리인지 모른다. 처음부터 자신을 전부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곳, 잠깐 흔들려도 쉽게 다른 사람으로 교체되지 않는 관계다. ‘멸종위기사랑’은 그 바람을 감추지 않는 제목이다. 사라질까 봐 걱정한다는 것은 아직 그것이 필요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사랑이 끝났다고 말하는 듯한 순간에도, 마음은 이미 놓지 않을 이유를 찾고 있다.

시대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사랑을 돌봄의 요청으로 해석하는 마지막 카드

사랑이 약한 것이 아니라, 오래 지키는 법이 어려운 것

사랑을 둘러싼 불안이 크다고 해서 사랑 자체가 약해졌다고 단정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감정이 자라는 속도를 충분히 기다리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관계가 깊어지는 데 필요한 시간과, 일상에서 요구받는 속도가 서로 맞지 않는 것은 아닐까. 주변보다 천천히 호흡하는 감정은 쉽게 지쳐 보이지만, 그렇다고 이미 사라진 것은 아니다.

이 관점에서 ‘멸종위기사랑’은 종료를 알리는 말보다 돌봄을 요청하는 말에 가깝다. 어떻게 오래 지속시킬지는 아직 잘 모르더라도, 계속 이어가고 싶다는 마음까지 잃어버린 것은 아니다. 불안한 환경이 사랑을 필요 없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믿고 기댈 수 있는 관계를 더 절실하게 만들기도 한다. 우리는 여전히 사랑을 필요로 한다. 어쩌면 바로 이런 시대이기 때문에, 그 필요를 이전보다 더 자주 느끼고 있는지도 모른다.

Colour Blue Magazine

앨범 정보와 수록곡: 이찬혁 — EROS, YG Entertain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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